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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배설(排說)

당신은 하나였다

by 뒬탕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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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업 폴 너스 생명 1강을 보고 감명 깊어서 적은 글. 아마 찾아보면 나와 같은 관점에서 글을 써서 내가 쓴 것과 비슷한 글이 있을 것이고, 그 글은 내가 쓰는 것보다 더 잘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GIB 제공

 

 당신 몸의 세포 중 하나를 골라 과거를 본다고 상상해보자.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이 말이다. 아무 세포나 상관없다. 그저 살아있는 당신의 세포이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지루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꾸로 본다한들 그대로 평범한 세포의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당신이 보던 세포의 핵에서 무언가 응어리지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염색체다. 그리고 옆에 있던 세포가 점점 다가온다. 계속 다가와서 서로가 서로를 눌러 터트려버릴 기세로 다가온다. 그러곤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나가 된다. 안쪽의 염색체들이 갑자기 줄을 서며 춤을 춘다. 그러더니 지독하게 사랑하는 남녀 한 쌍처럼 서로에게 다가가 합쳐지고 뒤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하나가 된다. 염색체들은 핵 안에서 사르르 녹듯이 흩어진다. 이제 세포는 어느 때와 같이 평범해 보인다. 방금 당신이 본 것은 세포분열의 과정이다. 거꾸로 보니 마치 합쳐지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이제 세포는 그냥 있다가 가끔씩 '합쳐지는' 것을 반복하며 계속 존재한다.

 

 이 세포는 당신의 학창시절에도 당신과 함께 존재했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도 함께 존재했다. 당신이 기쁘고 슬플 때, 설래이거나 괴로울 때, 당신 인생에서의 모든 시작과 모든 끝, 당신 인생의 모든 매 순간마다 당신과 함께 존재했다. 이제 당신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 이 세포와 함께. 당신은 점점 작아진다. 당신은 이제 태아다. 포배이고 낭배이다. 당신은 열여섯이다. 여덟이다. 넷이다. 둘이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세포다. 당신은 하나다. 당신의 모든 것은 이 세포 하나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당신은 이제 정자와 난자, 둘로 갈라진다. 둘 중 어디를 따라가도 상관없다. 방금 사랑을 나눈 남녀 한 쌍이 보인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봤던 기억보다 훨씬 젊고 활기차 보인다. 당신은 이제 그 둘 중 하나의 일부이다. 당신은 일부가 되어 그 사람과 같이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곤 다시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갈라진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존재 안에서 인류의 역사를 스쳐보낸다.

 

 이를 계속 반복하니 당신이 속한 존재의 모습이 점점 달라진다. 털은 점점 길어지고 등은 구부정해진다. 이제 마치 원숭이처럼 생겼다! 하지만 원숭이는 아니다. 당신은 원숭이와 닮게 생긴 당신의 조상의 일부였다. 당신은 쥐처럼 생긴 조상의 일부였다. 당신은 물고기처럼 생긴 조상의 일부였다. 당신은 편형동물처럼 생긴 조상의 일부였다. 당신은 이제 여러 세포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일부이다. 당신은 거기서 당신이 맡은 일을 꽤 잘 해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동료는 떠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동료 여덟이 떠나간다. 넷이 떠나간다. 둘이 간다. 그리고 마지막 동료가 당신을 떠나간다. 당신은 이제 혼자다.

 

 하지만 이것 역시 끝은 아니다. 당신은 당신 안쪽에서 부글거림을 느낀다. 그러곤 무언가가 당신 밖으로 나오려한다. 이는 미토콘드리아로, 20억 년 전 당신의 식사이자 당신이다. 이후 20억 년 동안 당신 안의 세포 소기관이 되어 에너지를 만들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밖으로 나온다. 당신은 둘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당신은 당신을 떠나간다. 당신은 이제 진짜 혼자다.

 

 당신은 이제 당신과 비슷한 존재와 계속 합쳐진다. 계속 합쳐지고 이를 반복한다. 당신은 점점 단순해진다. 수십억년간 셀 수 없을만큼 이를 반복한다. 이제 당신은 마지막으로 합쳐졌다. 당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당신은 처음이다. 시작이다. 당신은 이제 최초의 세포, 최초의 생명체, 루카다.

 

 이제 38억년의 시간을 다시 재생시켜 그 모든 순간을 다시 겪어 현재로 돌아와 보자. Omnis cellula e cellula.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온다.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들은 최초의 세포 루카(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로부터 38억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부모님, 당신의 친구들, 당신의 반려동물, 밖에서 지저귀는 새, 하수구 속의 쥐, 전등 주위의 벌래들, 바닷 속의 물고기, 숲 속의 나무와 버섯들, 공기 중의 박테리아까지 지금 이 순간 살아있거나 살아있었던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 38억 년 전에는 같은 존재였다. 모두 루카의 자식이고, 루카이고, 당신이다. 당신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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